이상민 의원 심정지 별세 5선 국회의원 프로필 나이 재산 가족 총정리
충청권의 대표 정치인이자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으로 알려진 이상민 전 의원(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이
2025년 10월 15일 오전 9시 30분, 대전 유성구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쓰러져 별세했다.
향년 67세. 정치권은 물론 지역사회 전체가 큰 충격에 빠졌다.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 대전 정가 충격
이상민 전 의원은 이날 오전 자택에서 마비 증세를 보인 뒤 쓰러졌다.
아내의 신고로 119구급대가 출동했지만, 현장 도착 당시 이미 심정지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급대는 즉시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며 대전 을지대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오전 10시경 사망 판정을 받았다.
그는 최근까지 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으로 활발히 활동해왔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부고에 정치권과 시민 모두 큰 슬픔을 드러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그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진심 어린 정치인이었다”며 애도를 전했다.
현재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사망 원인을 조사 중이며, 공식 사인은 심정지로 알려졌습니다.
이상민 의원 프로필과 학력,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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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상민 (李相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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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8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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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충청남도 대전 (현 대전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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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 2025년 10월 15일 (향년 6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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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경주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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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대전신흥초 → 대전중 → 충남고 → 충남대학교 법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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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전시근로역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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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배우자, 슬하 2남 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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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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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변호사, 정치인, 교수
장애를 이겨낸 법조인 출신 정치인
이상민 전 의원은 생후 6개월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한쪽 다리를 자유롭게 쓰지 못했지만, 휠체어를 타고도 전국을 누비며
정치 활동과 법률 봉사에 헌신했다.
그는 충남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뒤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24기를 수료하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이후 지역 사회 법률 상담과 사회적 약자 지원에 힘쓰며
‘약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변호사’로 이름을 알렸다.
2001년에는 우송대학교 겸임교수로 법학 강의를 맡아
젊은 세대에게 정의와 법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5선 국회의원으로 성장한 개혁 성향의 정치인
이상민 전 의원의 정치 인생은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멤버로 시작됐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대전 유성구(이후 유성구 을) 지역구로 출마해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18대, 19대, 20대, 21대 총선에서 연이어 당선되며 대전 대표 5선 의원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법제사법위원회 간사, 행정안전위원장,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 등
다양한 상임위에서 활동하며 합리적이고 실무 중심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다.
정당 내부에서 비판과 견제를 아끼지 않아 ‘미스터 쓴소리’, ‘골수 비주류’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정치 철학은 “정치는 국민의 삶을 바꾸는 일”이었다.
정당보다 국민을 우선시하며, 개혁과 중도 실용 정치를 추구했다.
민주당 탈당과 국민의힘 입당, 정치적 전환점
2023년 12월, 이상민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선언했다.
당시 그는 “지금의 민주당은 국민과 멀어졌다”며
이념보다 민생 중심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2024년 1월,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공개 회견을 가졌다.
당시 그는 “국민이 옳다고 느끼는 방향이라면 어떤 진영이라도 좋다”며
정치적 소신을 다시금 밝혔다.
이듬해 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으로 선출되며
보수 진영에서도 합리적 개혁 성향의 인물로 인정받았다.
2024년 총선 낙선 후에도 지역민 곁에 남은 정치인
2024년 제22대 총선에서 이상민 의원은 국민의힘 후보로 대전 유성구 을에 출마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신인 황정아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했다.
그러나 낙선 이후에도 그는 “정치의 성패보다 지역의 신뢰가 중요하다”고 말하며
유성구 지역 현안 해결과 청년 정치 육성에 힘썼다.
대전의 각종 행사, 청년 포럼, 사회복지 현장에서
그는 여전히 ‘현장형 정치인’으로 활약했다.
이 때문에 그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은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별명 ‘미스터 쓴소리’…합리적 비판으로 사랑받다
이상민 전 의원은 언제나 ‘예스맨’보다는 ‘쓴소리를 하는 정치인’으로 통했다.
국회 내에서는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원칙주의자였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소신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늘 “정치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해야 한다”는 말을 강조했고,
정당이 국민의 뜻에서 멀어질 때마다 쓴소리를 내며 변화를 요구했다.
이런 솔직함과 진정성 덕분에 정적과 후배 의원들로부터도 존경받았다.
가족과 재산, 인간적인 면모
이상민 전 의원은 1998년 12세 연하의 부인과 결혼해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가족에 대한 애정이 깊었으며, 정치 일정이 바쁘더라도
매년 가족과 함께 대전을 떠나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고 알려졌다.
그의 재산은 수십억 원대로 추정되며,
대전 유성구 자택과 약간의 부동산, 예금, 그리고 변호사 시절 저작권 수입이 주요 자산이다.
하지만 그는 사치와는 거리가 멀었고,
“정치는 권력보다 봉사”라며 소탈한 생활을 유지해왔다.
정치권 애도 물결과 장례 일정
이상민 의원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 인사들의 애도 메시지가 잇따랐다.
국민의힘은 “이상민 의원은 장애를 극복한 진정한 국민의 대표였다”고 밝혔으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정당은 달랐지만 언제나 따뜻한 정치인이었다”고 추모했다.
빈소는 대전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며,
조문에는 전·현직 의원들과 대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조문 일정과 장례 형식은 국회장 또는 당장으로 논의 중이며,
추후 공식 발표될 예정입니다.
마무리 — 장애를 넘어 국민에게 헌신한 정치인
이상민 전 의원의 삶은 장애를 극복한 의지의 상징이자,
법조인에서 정치인으로, 그리고 국민의 대표로 성장한 여정이었다.
그는 끝까지 대전을 사랑했고, 국민을 먼저 생각한 정치인이었다.
그의 별세는 한국 정치의 한 축이 사라진 큰 손실이다.
그러나 그의 소신, 헌신, 그리고 진심 어린 목소리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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